상화문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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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문학제

조국이 암울한 일제 치하에 놓여 있을 때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시로 부르짖으며 민족 정신을 일깨웠던, 대구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상화 선생을 재조명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한 문화예술 축제
백일장
- 접수 : 7월 13일 ~ 7월 31일 18:00까지
- 참가 부문 : 운문
- 참가 대상 :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생·일반부
- 접수 방법 : 이메일 접수(suseong1334@hanmail.net)
시낭송대회
- 일시 : 7월 25일(토) / 학생부 10:00 ~ 12:30, 대학생·일반부 14:00 ~ 17:00
- 장소 : 수성아트피아 무학홀
- 낭송 작품 : 제한 없음
- 낭송 시간 : 3분 내외
- 참가자 접수 :
- 접수 : 7월 15일(수) 09시부터, 사전 접수 무효
- 선착순 접수 마감
- 반드시 낭송원고와 함께 전화번호, 주소 필히 기입
- 접수 방법 : 이메일 접수 suseong1334@hanmail.net
- 참가 인원수 : 학생부30명(선착순), 일반부 50명(선착순)
이상화 연보
- 1901 : 음력 4월 5일 대구에서 부 이시우의 차남으로 출생
- 1907 : 8세때 부친 작고, 이후 백부 이일우의 가내에 설치한 사숙에서 공부함
- 1915 : 경성중앙학교(현, 중동) 입학, 수료함
- 1919 :
- 3. 1운동 당시 백기만 등과 함께 계성학교 학생 동원과 독립선언의 선전문을 작성하여 시위행사를 준비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주요인물이 검거되자, 상화는 서울로 피신. 이해 10월 백부의 권유로 서온순과 결혼
- 1921 : 5월경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와 만나고 <백조>동인
- 1922 :
-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프랑스에 유학할 기회를 얻기 위하여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스에서 2년간 수학, 이 시절에
함흥 출신의 유학생 류보화와 교제함
-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프랑스에 유학할 기회를 얻기 위하여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스에서 2년간 수학, 이 시절에
- 1923 : 관동 대진재 직후 한국인 학살의 현장에서 생환
- 1924 : 관동 대진재의 충격으로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 서울에 거처를 정하고 <백조> 동인들과 교제함
- 1925 : <빈촌의 밤> 등 작품을 발표. 경향파 문학에 가담함
- 1926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 70호에 발표
- 1927 : 의열단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됨
- 1934 :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맡아서 경영하였으나 실패함
- 1937 :
- 당시 북경에 머물고 있던 독립투사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서 3개월간 머물다가 귀국, 귀국 직후 일경에 피검되어 고초를 겪음. 이후 대구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의 무보수 강사로 근무하는 등 교육에 관심을 기울임
- 1943 : 4월 25일 위암으로 사망
- 시집 : 『늪의 우화』『나의 침실로』 『석인상』『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별을 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