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무재

  1. 문화예술
  2. 문화재
  3. 문화재자료
  4. 독무재

독무재

독무재 전경

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鄕里)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1750~1828)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건물이다. 하시찬(夏時贊)은 현재의 독무재가 있는 서쪽 50m 지점 독무암서(獨茂巖棲)란 조그마한 재실에서 기거(起居)했으며, 이 때가 그의 나이 39세되던 1789년이다. 그는 당대의 석학이던 이경호와 송성담 밑에서 수학하였으며, 그의 명성을 듣고 지방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배우기를 청해 독무재에서는 언제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독무재는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 건설공사로 말미암아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되었다. 이전 시 독무재 서쪽에 경덕사와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경덕사(景德祠)에서는 매년 3월 상정일(上丁日)에 각지의 유림들이 모여 춘향(春享)을 지냈으며, 장판각에는 지금도 팔례절요 판각이 보관되어 있다.

독무재 경내는 사당(祠堂)인 경덕사(景德祠)와 강당(講堂)인 독무재가 병렬로 배치된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로 되어있으며, 강학(講學)기능을 가진 독무재는 정면6칸, 측면1칸 반 규모로 가운데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있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대구시내 고건축 가운데 보기 드문 것으로, 대구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조선유학자의 한 분인 그의 정신과 학덕을 추모하는 기념적 건물로서 가치가 높다.

상세정보

기본정보

  • 종별 및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7호

위치안내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위치보기

현재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사용편의성 만족도
자료 담당자
문화예술과 설희정
전화번호
(☎ 053-666-2174)
최근자료수정일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