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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자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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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자 정려각

하효자 정려각 전경

이 정려각 안에는 고려 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효성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다.

하광신은 효성이 지극하여, 한겨울에 병환 중인 노모께 복숭아를 구해 드렸고, 노모가 별세하자 그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하였다. 이를 알게 된 고려 충숙왕(忠肅 王)이 1327년에 ‘효자 고려 이부시랑 하광신지려(孝子 高儷 吏部侍郞 夏光臣之閭)’라는 정문(旌門)을 세우고 그 자손들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정려가 내려진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이 정려가 대구 경북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하효자의 정문은 처음에 달성 하씨(達城 夏氏)의 종산(宗山)인 수도산 부근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조선 정조 5년(1781)에 지금의 정려비를 새기고 만촌동 형제봉 기슭에 정려각을 다시 세웠는데, 일제 강점기 때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정려각 안에는 하광신이 받은 정려의 내력을 새긴 정려비와 이 정려각을 새로 지은 내력을 쓴 중건기문(重建記文)이 들어 있다. 정려비의 비문은 이조판서 황경원(黃景源)이 지었고, 글씨는 사헌부 지평 이약채(李若采)18)가 썼다. 중건기문은 하광신의 18세손인 열암 하시찬(悅菴 夏時贊)이 1784년에 쓴 것이다.

  • 시묘(侍墓): 부모나 남편의 상을 당해, 그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사는 일
  • 정문(旌門) :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

상세정보

기본정보

  • 종별 및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8호

위치안내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389-9 위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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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자료수정일
202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