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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동 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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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동 비석군

대구 욱수동 유적 전경모습

현재 대구고산초등학교 교정 내 정문 왼편에 조선후기의 선덕비(善德碑) 9기의 비석이 있다.선덕비(善德碑)는 지방 수령이나 세도가들이 교화를 끼쳤을 때, 백성들이 그 치적을 생각하고 공훈과 관련 있는 곳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세워지는 장소에 따라 그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의미는 같다.

조선시대 고산지역은 경산현에 속해 있던 곳이다.
경산현의 현령으로 재임한 현령들과 그 외 고관들의 선덕비 여러 기가 고산지역에 세워져 있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지역개발과 도로확장 등으로 인해 고산지역 국도변에 방치되어 있던 비석들을 1978년에 고산회(현 고산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수습하여 현재의 고산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1. 현령심후휘수준청덕애민선정불망비(縣令沈候諱壽浚淸德愛民善政不忘碑)
- 조선 숙종42년(1716년) 경산 현령으로 부임한 심수준(沈壽浚)이 2년 선정(善政)을 베풀었음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96년 12월에 건립된 것이다.

2. 통훈대부김대엽시혜비(通訓大夫金大燁施惠碑)
- 대한제국 광무2년(1898년) 4월 통훈대부 김대엽(金大燁)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은혜를 베푼것에 대해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3. 종이품봉상사제조서상하송덕비(從二品奉常司提調徐相夏頌德碑)
- 조선 철종3년(1852년) 3월 서상하(徐相夏) 의 빈민구휼(貧民救恤)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4. 관찰사조상국강하영세불망비(觀察使趙相國康夏永世不忘碑)
- 조선 고종22년(1885년) 3월 관찰사 조강하(趙康夏)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 된 것이다.
* 경상감영공원 안에도 조강하(趙康夏)의 불망비(不忘碑)가 있다.

5. 현령이후헌소청덕선정비(縣令李候憲昭淸德善政碑)
- 조선 고종8년(1871년) 정월에 현령 이헌소가 재임 중 농업의 진흥, 인재양성, 신상필벌(信賞必罰), 조세의 형평, 구휼 등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서 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6. 현령박후종구거사비(縣令朴侯宗球去思碑)
- 조선 순조17년(1817년) 현령으로 재임했던 박종구(朴宗球)가 주민들에게 흉년에 감세 혜택 및 구휼을 함으로써 선정을 베풀었음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7. 전오위장강대봉송덕비(前五衛將姜大鳳頌德碑)
- 조선 헌종9년(1843년) 오위장을 지낸 강대봉(姜大鳳)의 선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비로서, 가뭄으로 밀보리 작황의 피해가 극심해진 백성들을 구휼하였기에 선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8. 순상국김공휘명진영세불망비(巡相國金公諱明鎭永世不忘碑)
- 조선 고종28년(1891년) 5월, 순상국(巡相國) 김명진(金明鎭)은 흉년에 빈민구휼에 힘썼으며, 이농자(離農者)들에게 농토를 주어 정착시키는 등 선정의 치적을 칭송하여 비를 세운 것이다.
* 경상감영공원 안에도 김명진(金明鎭)의 불망비(不忘碑)가 있다.

9. 현령이후만승청덕선정비(縣令李候晩昇淸德善政碑)
- 조선 고종15년(1878년) 3월, 현령으로 부임한 이만승(李晩昇)이 빈민 구휼하고 전염병을 막고, 선정을 베푼 치적을 칭송하고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 것이다.

상세정보

기본정보

  • 시대 : 조선시대, 대한제국

위치안내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3067 (고산초등학교 교정 내) 위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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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자료수정일
202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