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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축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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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축성비

영영축성비 전경모습

이 비석은 조선 영조 12년(1736)에 이루어진 대구읍성의 재건 과정과 규모를 새긴 것으로, 1737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당시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로 읍성 재건을 주도했던 민응수(閔應洙)가 지었고, 글씨는 백상휘(白常輝)가 썼다.

대구읍성은 선조 23년(1590)에 토성(土城)으로 축조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것을 영조 12년에 석성(石城)으로 재건하였다. 비문에 따르면, 이 재건 공사는 1736년 1월부터 시작하여 6개월 정도가 걸렸으며, 공사에 동원된 인원은 78,584명에 이른다. 규모는 둘레가 약 2.68㎞, 높이는 대략 3.5~3.8m였으며, 여첩(女堞), 즉 성 위에서 몸을 숨기고 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한 구조물이 819개였다고 한다.

이후 대구읍성은 대구를 방어하는 역할을 해 왔고, 고종 7년(1870)에는 크게 중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성을 불편하게 여기던 일본인들의 요구가 드세어지자, 당시 대구군수였던 박중양이 1906년부터 1907년에 걸쳐 이 성을 완전히 철거하였다. 당시까지 대구읍성의 남문인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앞에 세워져 있었던 이 비석은 다른 곳에 방치되다가 1932년 대구향교로 옮겨졌고, 1980년에 영남제일관이 재건되면서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다.

상세정보

기본정보

  • 종별 및 지정번호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 지정년월일 : 1982.3.4.

위치안내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만촌동)(영남제일관 광장) 위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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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자료수정일
202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