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명유래

  1. 행복수성
  2. 수성구 소개
  3. 지명유래
  4. 황금동

동명유래

  • 대구부(大邱府) 수북면(守北面)의 지역으로 황청리(黃靑里)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황청동(黃靑洞)이 되어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에 편입되었으며, 1938년 10월 1일 대구부(大邱府)에 편입되었다.
  •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우리지방에 궐기했던 의병장 손처눌(孫處訥)선생이 임란 당시 피난하여 이 마을을 개척하여 곡식을 심으니 푸른산이 주위를 에워싸고 들녘의 곡식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하여 황청(黃靑)이라 하였으나, 저승의 다른 말인 황천(黃泉)과 이름이 비슷하여 1977년 황금동으로 동명을 개칭하였다.

황금동의 자연부락 유래

황금동의 자연부락 유래-홈골, 못안, 밤마실, 봉천, 주봉리
홈 골 황금동이 황청동이라고 불릴 당시 들판에는 오곡이 풍성하고, 그 들판 가운데로 지산동, 두산동에서 유입되는 내(川)가 흐르고 있고 그것이 마치 널따란 판자에 홈을 낸것 같아 보였기에 이 지역을 홈골이라 불렀다. 지금은 70m 동대구로 건설로 복개되어 주요한 간선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못 안 지금의 우방신천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전 이 지역은 못(池)이었고 이 못을 지나야만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멀리서 보면 마치 못안에 마을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못안'이라 불렀다.
밤마실 지금의 황금아파트 지역은 옛날 야산으로서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이 마치 밤처럼 생겼으며 집집마다 밤나무가 없는 집이 없다하여 밤마실 또는 밤골이라 불렀다.
봉 천 지금의 경북고등학교자리에는 내(川)도 없고 수리관개가 나빠서 물이 귀하였다. 따라서 농사를 지을 때는 천수답¹에 의존해서 지을 수밖에 없어 하늘을 받들고 살았다 하여 봉천(峯天)이라 하였다.
주봉리 밤밭골과 봉천 가운데 지역에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이 마을 뒤편에 있는 산의 봉우리가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주봉리라 하였다. 지금은 황금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현재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사용편의성 만족도
자료 담당자
행정지원과 김수현
전화번호
053-666-2224
최근자료수정일
2024.01.05